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결국 신뢰가 모든 것입니다.
1996년 제가 안과의사가 되었던 그 해
초보 안과의사였던 저를 믿고 본인의 눈을 맡겼던 환자분의 신뢰나
거의 30년 간의 안과의사 생활로
이제는 관록이 생긴 저에게 본인의 눈을 맡기시는 환자분의 신뢰 사이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습니다.
반대로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시고
불안하시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시는 환자분의 불신도
1996년 너무나도 젊고 경험이 없어 보였던 저를 바라보던
어떤 환자분의 불안한 눈빛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30년간
저에게 수술을 받는 환자분의
이러한 불안한 마음을 편안한 믿음의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서 무던히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항상 누구보다 먼저 최신 수술장비를 구입해서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장비 성능만 뛰어나다면 구입비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늘 남보다 더 빠르게 의료기술을 배우고 습득했으며
술기를 향상 시키기 위해 반복적인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수술 기법과 치료 방법을 더 발전시키고
안과의사 중 최고가 되기 위해서
연구와 학회 발표에 혼신을 다해
어쩌면 저의 청춘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 는 늘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저의 진심과 열정이 환자분들의 마음 속 깊이 그대로 전달되어
환자분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기에는 항상 제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늘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아쉬움과 뛰어넘기 힘든 한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무렵
환자와 의사 사이의 두터운 신뢰는
단순히 진료, 수술과 같은 치료 과정에서의 만남의 시간뿐 아니라
환자분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 처음 대면하고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공간' 이라 중간 매개체를 통해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싼 가구와 고급 자재의 삐까번쩍하는 억지 인테리어 공간이 아니라
공간 기획, 구성 그리고 아주 세세한 오브제 까지도
제가 직접
환자분이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불안감과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하여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혼심을 다했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이 진료나 잘 하면 되지 무슨 인테리어에 이렇게 신경을 쓰냐?' 고 모두들 비웃었지만
그렇게 5-6년 지난 후
제가 진심으로 준비한 공간을 경험한 환자분들의 긍정적인 입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이제는 저의 진심이 환자분들에게 공간을 통해서 전달되어서
저를 이전보다 더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이 헛되지 않았음에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간에 진심인 이오스만의 새로운 공간창조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형입니다.
최근 저의 공간 창조 프로젝트와 결을 같이하는
책 한 권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감각의 설계자들 김양아 저. 북스톤 2025'
이 책에 소개된 많은 획기적인 공간 설계 중
제가 구상하고 있던 시물레이션과 비슷한 2가지 사례가 있어서
간단하게 블로그에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우도 하우스 (Audo House)
아우도 하우스는
1918년 지어진 철을 만들던 제조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새롭게 리뉴얼하여 재창조한 공간으로
코펜하겐 노드하븐에 위치하며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menu, 크리에이티브 그룹 놈 아키택츠
킨포크 창업자 네이선 윌리엄스가 협업하여 만들었다.
오래된 창고 건물, 콘크리드와 붉은 벽돌 그리고 철제 프레임으로 구성된 건물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호텔이자 쇼룸, 카페이자 협업 오피스, 브랜드의 실험실로 재탄생하였다.
이곳에서는 체류, 구매, 업무, 관람, 대화까지 서로 다른 목적의 행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우도 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공적공간과 사적공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모든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Audo concept shop
Audo restaurant
Audo library
Audo residence
Harbour space (소규모 모임이나 미팅을 위한 공간)




아우도 하우스는
위에 나열한 쇼룸과 호텔, 오피스와 카페의 경계를 허문 하이브리드 모델로
이곳에는 전통적인 호텔 로비가 없고 그 자리에는 커피를 내리는 바가 있고
리셉션 데스크에는 편집 매장이 존재하는 식이다.
이곳에는 장소의 목적에 부합하는 단순한 기능의 조합이 아니라
공간의 목적과 감도, 브랜드의 철학이 충돌없이 긴밀하게 맞물리는 통합 공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리테일, 오피스 ,호텔, 커뮤니티라는 상이한 목적의 공간들이
서로 충돌없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되며,
이곳에서는 상품의 홍보나 브랜드가 공간을 채우는 대신
공간 자체가 브랜드의 철학과 감수성을 드러낼 뿐이다.
디자인은 스타일이나 장식을 강조하기보다는
방문객들이 어떠한 감정 상태로 머물게 될 지를 염두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가구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사용자의 움직임과 시선의 흐름에 따라 배치되고
조명은 밝힘의 기능이 아닌 공간의 밀도를 조율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직선과 곡선, 우드와 패브릭, 석재와 금속 등 다양한 매질의 조합은 미감의 대비가 아닌,
서로 다른 재질의 긴장과 완화를 통해 정서적인 균형을 만들어 낸다.
공간은 머무는 사람, 일하는 사람, 방문하는 사람 사이를 명확히 분리하지 않는다.
아우도 하우스의 카페와 레스토랑도
단순한 식음공간을 넘어 투숙객과 방문객 그리고 스태프들까지 경계없이
섞이는 개방형 커뮤니티 허브로 작동한다.
아우도 하우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유형은
단순히 여러 기능이 하나의 공간에 혼재된 형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의 개별 공간들이 하나의 브랜드 전략 안에서 상호 시너지를 창출하는 시너직 모델이다.
쇼룸은 제품을 직접 쓰게 하고, 오피스는 일하는 방식을 드러내며
객실은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고, 카페는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것이 증명하는 바는 명확하다.
공간은
이제 배경이나 단순히 브랜딩을 위한 조연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곧 주연이고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2. 퀵르크 (kwerk)
퀵르크는 세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들과는 다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이곳은 '하이앤드 공유 오피스' 라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공유 오피스' 하면 오픈형 공간, 활발한 네트워킹과 커뮤니티등 활기찬 분위기가 떠오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유 오피스들이
오랜 기간 비용절감과 협업의 가치를 내세워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고
효율을 중요시하는 기존 개념의 공유 오피스는 창업과 네트워킹에 최적화된 모델로 자리 잡았다.
퀵르크 창업자인 알베르 앙젤은
'왜 공유 오피스는 늘 개방적이고 대중적이여야만 하는가' 에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철저한 프라이버시와 폐쇄성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할 때는 네트워킹과 교류도 가능한 하이앤드 공유 오피스 모델을 만들었다.
총 5개의 퀵르크 지점은 각기 다른 퀵르크만의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으며
공간이 추구하는 본질은
업무효율과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장하면서도
감각적이며 미학적인 만족감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고급 호텔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엄선된 예술적 오브제, 조화로운 색채가 어우러져
공용공간 조차 마치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지게 철저하게 기획되었다.

앞으로의 공간 비지니스는
점차 세분화되고, 소비자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을 섬세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퀵르크의 모델은
공유 오피스가 기존의 단순한 저렴한 사무실 대여나 열린 협업을 유도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고급스럽고 독립적인 업무환경을
제한된 멤버들과 함께 공유하는 프리미엄 형태로 확장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델은 처음에는 소수의 하이엔드 고객들을 위한 제한된 마켓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프라이버시와 폐쇄성를 갈망하는 다양한 계층을 폭넓게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공유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똑같은 컨셉의 코워킹 스페이스는 이미 레드오션이 된 상황이다.
퀵르크와 같은 하이앤드 모델은
시장 포화상태에서도 명확한 차별성을 확보하고
공간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희소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결국 퀵르크는
공유 오피스 시장을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운영 모델과 소수에게만 허용 되는 프라이빗 모델로 양분 시킨 후
후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브랜드 포지셔닝' 을 구축하였다.
업무라는 필수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을
럭셔리하며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가치와 결합하여
소비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큰 전략적인 차별점이다.



아우도 하우스를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는 공간들이 이제는 경계 없이
하나의 플랫폼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세계적인 공간 디자인의 추세임을 지켜 보았습니다.
퀴르크를 통해서 우리는
이제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에서는
대중적이며 효율을 중요시 하는 모델과 뉴 럭셔리 모델로 양분 시킨 후
후자의 영역에서
선제적으로 독보적인 브랜드 포지셔닝을 한 발 앞서 구축해야 함을 인지하였습니다.